디자인 서적

<UX 디자인이 처음이라면> 이현진 저 ★★★

saejun 2023. 8. 1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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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UX디자인의 1세대 교육자, 홍익대학교 이현진 교수가 집필한 입문서다. 가볍게 읽어볼 마음으로 집어 들었는데 UX디자인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한 비전공자 입장에서 기대 이상으로 도움이 된 부분이 많았다. 사실 부트캠프나 온라인 강의를 통해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소프트웨어나 디자인 테크닉을 배우는데 치우칠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예비 UX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배울 수 있었다.


현재에 집중하는 게 미래를 준비하는 길

늦은 나이에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조급함을 많이 느낀다. 사실 디자인 연습이나 과제 등 실제로 디자인 작업 자체는 재밌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 때문에 공부에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현재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뼈 때리는 조언들이 많이 나와 읽는 내내 반성했다:

 

"만약 오늘 해야할 과제가 있다면, 그 과제를 열심히 하는 것이 미래를 확실하게 준비하는 길이다. 어떤 작은 기회가 왔을 때, 이 기회를 잘 잡고 열심히 수행해서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두자.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서 한 발자국씩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아직 찾지 못한 대단한 기회와 방법을 고민하고, 정체하지 말자. 그런 대단한 일은 내가 우습게 여기던 쉽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찾아진다."

 

"진로에 고민이 많은 4학년에게는 일단 앉아서, 또는 누워서 고민만 하는 시간을 없애라고 말한다. 지금은 행동이 필요한 시기이고, 내가 한 행동의 경과들이 앞으로 나아갈지, 다른 길을 찾을지를 판단해 주는 가장 확실한 평가 기준이다. 뭘 하는 게 좋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뭐가 되는 행동 한다는 게 훨씬 중요하다. 직접 해보면 하는 게 좋은지 아닌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

 

"오늘 하루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또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고, 가장 시간이 넉넉한 날이다. 앞으로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일 잘하는 것보다 지금 잘하고,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들자. 그리고 또 내일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다 보면, 성공적인 매일이 나를 맞이할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 어떻게 보면 정말 진부한 조언이지만, 마인드 컨트롤하고 하루하루 나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내가 현재 나의 조급한 심리를 상황에 비유하자면 플랫폼에서 출발하기 직전인 막차를 향해 뛰어가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열차를 막차라고 생각하지 말고, 분명히 다음에 오는 또 다른 열차가 있을거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디자인 공부를 이어나가야겠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바심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과 함께 개인적으로 마주한 또 다른 습관은 디자인을 연습하는 것보다 디자인 관련 지식을 찾는데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최신 디자인 트렌드나 화두인 AI 등과 같은 소식을 찾아보는데 꽤 많은 시간을 쏟을 때가 종종 있는데, 객관적으로 현재는 디자인 연습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하는 시기다. 역시나 이와 관련된 뼈 때리는 조언들이 책에 많이 나온다:

 

"디자이너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디자인을 잘하기 위한 소양과 지식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디자인 연습이다. 그것도 자주, 많이, 오래 해야 디자인 역량이 생긴다."

 

"글을 잠깐 보고 '좋아요'를 누른다고 내가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사이의 인지 부조화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비핸스나 드리블을 많이 보는 것보다 실제 자기 손으로 많이 만들어 보세요).

 


양이 확보되어야 질이 따라온다

간혹 나는 왜 이렇게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지, 창의성이 없지라고 자학(?)할 때가 있다. 아마 디자인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여러 번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요즘엔 덜 하지만 나도 예전에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할 당시엔 늘 이런 콤플렉스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대학에서 공부한 4년 중에 마지막 1년은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계속 파다 보면 디자인 실력도 분명히 는다는 것을 3년 동안 삽질하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책에서 언급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생각이란 일단 양이 확보되어야 질이 따라온다. 같은 화면을 10개 이상 다른 디자인으로 전개하라는 내용이 있다. 처음 3개 정도의 화면은 쉽게 그려지지만, 5개를 넘어가면서 새로운 화면 디자인을 생각하려면 고통이 시작될 것이다. 정말 좋은 디자인은 8번째 이후부터 나온다."

 

"2016년에 발표된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에는 동일 앱 화면에 관한 디자인 12개를 놓고 비교 평가하는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실무 디자이너들도 이렇게 많은 디자인 아이디어를 낸다."

 

"나는 발견점 도출 과제를 줄 때 찾아야 할 발견점의 개수도 정해 준다. '사용자 한 명 관찰건당 20개 이상' 이런 식으로 활동마다 찾아야 할 발견점의 숫자를 정해서 전체 인사이트의 목록이 150~200개 이상이 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과제에서 더는 질을 논할 상황이 아니다. 뭐라도 적어서 개수를 맞추는 게 더 급하게 된다. 하찮아 보이는 발견이라도 꼭 양을 채우게 하는 건 양을 채우려고 자세히 보다 보면 높은 수준이 발견이 나오기 때문."


청소디자인

역시나 읽으면서 또 한 번 반성한 부분. 책 읽는 내내 반성만 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내가 해온 과제들은 전부 청소디자인이란 점범주 안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청소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학생들이 기존 앱을 써 보면 특정 페이지의 가독성이 나쁘다던지, 워크플로우에 문제가 있다든지, 레이블이 잘못된 것을 쉽게 알아낸다. 그리고 그런 소소한 문제들을 개별 대응하여 가독성을 높이고, 레이블을 수정하는 수준이 해결안을 내려고 한다. 이런 식의 표면적인 해결안이 바로 청소디자인이다."

 

"사용자들의 기대가 얼마나 높은데, 이렇게 청소만 해주고 감동을 얻을 수 있겠는가. 표면적인 이슈들은 찾기 쉽고 당연히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용자 경험의 의미 있는 변화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청소만 하지 말고 새로운 주거 경험을 제공하도록 집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웹과 앱,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화면만 훑어보지 말고, 화면 뒤에 숨겨진 문제의 근원을 찾아 경험의 줄기가 아예 다른 디자인을 하자. 화면의 디자인 요소들은 사용자 경험이 변화하는 큰 줄기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청소는 나중에 당연히 따라오는 부가서비스이다."

 

"만약 집에 관한 표면적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마당을 청소하고, 벽을 보수하고, 문틀을 고쳐 주었다면 해당 집의 가족들이 그렇게 많이 감동했을까. 고마워하기는 하겠지만, 감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다시 집이 다시 지저분해지고, 고장 나면 가족은 다시 불행해질 것이다. 이러한 땜질식 디자인 해결을 나는 수업에서 '청소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아무 데서도 안 쓰는 개념이지만, 이해하기는 쉽다. 청소디자인이란 눈에 쉽게 보이는 단편적인 문제만 청소하는 해결하고,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디테일 싸움

부트캠프 강의에서 강사님이 늘 강조하는 부분이 있는데, 디자인 실력이 상황 평준화되면서 작업의 디테일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 거기다 웹의 경우엔 static 한 웹사이트보다 패럴랙스 스크롤링이 적용된 웹페이지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론 애니메이션이나 패럴랙스 같은 기능도 추가적으로 배워서 보다 입체적이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어야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

 

"주요 앱 서비스들의 디자인 표현을 분석해 보면 디테일에 과몰입하는 디자인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이는 디자인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 완성도 있는 서비스로 인식되지 않는다."

 

"앱에서는 화면이 다른 화면으로 전환되는 순간의 애니메이션과 버튼을 눌렀을 때의 섬세한 버튼 반응, 사운드와 화면 그래픽의 정교환 조화 같은 절묘하고도 소소한 디자인 표현들이 사용자 경험의 완성을 좌우한다."


나이 많은 디자이너의 경쟁력

사실 통상적으로 디자이너는 나이 들어서 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있다. 30대 중반이 돼서야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내가 조바심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근데 이런 생각이 최근 들어선 많이 바뀌었다(물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부분도 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바로 지금 다니는 학원에 만난 한 강사님 때문.

 

포토샵 심화수업을 감당하시는 50대 강사님이신데 지금도 현업에 계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유명 에이전시에 다니는 제자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연락이 많이 온다고 하신다. 포토샵만 30년 가까이 사용하셨다고 하는데, 매번 수업을 들을 때마다 관련 지식과 디테일에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50대에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선배 동료 디자이너들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최신 트렌드나 감각적인 부분에 대해선 부족한 부분이 있을진 모르지만 오히려 디자인 인사이트(통창력)는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가치가 축적되고 배가된다고 강조한다.

 

디자인의 범위는 확장되고 있다. 특히, UX디자인의 경우 눈에 보이는 그래픽적인 아웃풋을 내던 시기는 지나고 리서치와 데이터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디자이너 관점으로 새로운 기술들을 제안하고 구현시키며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AI가 발달하면서 스크린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디자인(Non-UI, Non-Screen)에 대한 주제들도 점점 더 많이 논의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오히려 다가오는 미래에 디자이너의 수명은 더 연장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조심스러운 희망을 가져본다.


정리하며

위에 개인적으로 정리한 내용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에 관한 가이드나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통해 UX디자인 업계의 전망과 성장해야 할 방향에 관해서도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책 제목처럼, 이제 막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학생이나 입문자(특히 비전공자)는 꼭 한번 읽어봐야할 UX디자인 입문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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