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서는 2019년 출판된 <How to Speak Machine: Computational Thinking for the Rest of Us>
저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UX디자인 선구자 중 한 명인 존 마에다. MIT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이후, MIT 미디어랩 교수와 RISD 총장을 지닌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요약하면 컴퓨터 공학과 예술, 디자인 분야에 모두 통달한 인물이다. 이런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 쓴 책인 만큼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다.
컴퓨터 세계와 화합되는 예술가의 특성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예술가, 이 둘은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흔히 프로그래머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예술가는 자유롭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책에서 기술과 디자인을 아우르는 융복합적 사고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예술가도 컴퓨팅 세계와 완벽하게 화합되는 하나의 특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예술이란 행위는 단순히 보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숨겨진 모든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그 핵심에는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는 행위다. 훌륭한 예술가는 사과를 단순히 원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미세한 오각형 형태를 표현해 사실적으로 그린다. 또한, 인체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골격과 근육구조를 공부하는 논리적이면서도 세밀한 과정을 거친다.
가상 컴퓨터 세계와 현실 사이의 연결고리
가상 세계와 현실도 마찬가지로 완전히 분리된 다른 세계로 인식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번에도 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서 설명한다.
청자고둥(Cone Shell)의 껍데기에는 작은 삼각형이 모여 더 큰 삼각형을 이루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이 패턴은 유명한 컴퓨터 과학자인 스티븐 울프럼(Stephen Wolfram)이 발견한 컴퓨터 알고리즘 '규칙 30'과 비슷하다. 즉, 검은색 컴퓨터 바탕에 작성해 놓은 비인간적인 알고리즘 코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며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언급하며 저자는 자연과 기계의 언어 사이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과 기계의 경계도 모호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2022년 11월, ChatGPT의 등장과 함께 현실화되고 있다. ChatGPT는 인간의 명령을 따르도록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이지만 종종 인간처럼 비이성적인 판단을 할 때가 있다. 결국 인간이 생성한 데이터에 의해 훈련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존재가 될 것이라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실제 감정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감정을 가진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2015년에 로봇개를 발로 차는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구글의 로봇 자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개(Spot)를 발표했는데, 로봇 윤리에 대한 논란이 생긴 적이 있다. 로봇의 균형감각을 테스트하기 위에 직원이 Spot을 발로 차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 즉, 그 대상이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로봇임에도 현실의 대상과 유사할 정도로 고도화되면 인간의 동정심을 유발한다.
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공지능 특이점을 표현한 SF 영화인 그녀(Her)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인공지능 '사만다'에게 감정이입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완성된 작품이 숭배받는 시대의 종말
작가는 다가오는 미래에는 수십 년 동안 추구해 온 완벽한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과거의 시대를 '디자인의 성지'라고 표현하는데, 이 시기엔 '완성된' 작품이 인정을 받아왔다. 완벽한 디자인과 높은 품질을 추구한 끝에 완성된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어 각광받고 숭배를 받아왔다. 그리고 제품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기반의 '기술의 성지'에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생각을 본질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제품은 월, 일, 초 단위로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꾸준히 개선된다. 완벽하게 제작되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제품을 유지 보수하는 것보다 제품을 얼마나 자주 업데이트되고 개선하는지가 품질의 기준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실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애자일(고객의 변화하는 요구 사항에 유연하게 대응)한 태도를 가진 디자이너가 더 각광받을 것이라 주장한다.
정리하며
최근 UXUI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이제 막 코딩공부도 병행하기 시작한 지금 읽기에 딱 시의적절한 책이었던 것 같다. 늘 예술과 디자인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와 코딩은 정말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나는 코딩과 맞지 않는다는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조금씩 이해도가 쌓이면서 코딩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래픽툴을 사용해 구현한 디자인을 코딩으로 똑같이 구현하는 과정이 논리적인 사고를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UX 디자인은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그래픽툴을 사용해 손에 잡히는 시각적인 아웃풋을 내던 시기와 달리, 리서치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디자인적인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형태로 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UX 디자인이 처음이라면> 이현진 책 후반부의 인터뷰 중에서 위 내용과 연결되는 내용을 발췌해 아래에 적어놓는다:
"UX 자체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여러분들이 만든 디자인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며 그 업무의 본질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화 '그녀(her)' 에서처럼 자연스럽게 말만 하더라도 컴퓨터는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수행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남는 것은 인터페이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의도하는 일을 얼마나 멋지게 해내도록 도와줄 것인가가 될 것입니다."
"논 스크린(non-screen) UX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보길 바랍니다. UX 디자인은 사용성을 핵심 가치로 추구해야 하지만, 제품의 기능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가를 실험하는 데 있어 더 본질적인 도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로봇의 시대가 오면, 로봇은 사람과 눈을 맞추고 말을 하며 자신의 목소리와 태도, 표정을 통해 답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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