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여러 현실적인 이유와 타협하면서 그 꿈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이너 직군이 상대적으로 박봉이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시절 5년제 건축학과에 재학 중이던 나는 기울어진 집안사정으로 인해 4학년까지만 이수하고 학교를 떠나야 했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사실 건축설계를 전공한 배경을 살려 디자인 쪽으로 취업을 준비해 볼 수도 있었지만, 집안생활비의 대부분을 당장 내가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외국계 애드테크 기업에 취직했다.
애드테크 회사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한창 모바일 광고가 뜨던 시절이라 회사는 매달 고속성장을 했고 직원수 대비 수익성이 매출이 높은 광고회사 특성상 연봉과 워라밸도 만족스러웠다. 달콤한 생활에 빠져 나는 점점 나태해져 갔지만, 꼭 나쁜 점만 있던 건 아니었다. 스타트업 문화를 경험함과 동시에 경영에 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던 내가 비즈니스 개념을 탑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입사 과정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투자수익률(ROI) 같은 기본적인 용어도 몰라서 일일이 다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이후엔, 회사를 다니면서 진행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VC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아서 1년간 창업 멘토링을 받는 값진 경험도 했고, 여기서 기획과 마케팅을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1000억대 투자를 받은 한창 떠오르던 스타트업에 마케터로 이직도 했다.
이대로 계속 순항하나 싶었지만, 결과적으론 이 선택이 나의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기존에 마케팅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과에 대한 압박을 받다 보니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지고 자신을 몰아붙였고, 결국 번아웃이라는 화살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결국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일단은 멈추고 휴식기를 가졌다.
그리고 휴식기를 갖는 동안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며 내 커리어와 더 나아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무조건 창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이걸 성공시켜야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타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근데 성공은 결과물이지 과정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하루하루 쌓이는 과정과 적당한 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여기서 과정은 내가 선택할 수 있지만 운과 흐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들기 전에 내가 어떤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스티브잡스가 말한 것처럼 적어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성공하지 못해도 덜 억울할 테니까.
휴식기를 가지며 다시금 디자이너에 대한 미련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땐 팀에 전문 디자이너가 없어서 어설프게나마 스케치와 제플린을 독학해 가며 웹서비스의 UI를 디자인했고, 스타트업에 있을 땐 늘 디자이너들과 협업할 때가 가장 즐거웠다. 덤으로 프로덕트팀에선 어떤 업무를 하는지 궁금해서 그들의 UIUX 관련 회의록과 제플린 화면들을 종종 염탐했다. 그리고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늘 했었다.
그래서 더 나이 먹고 영영 후회하기 전에 디자이너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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