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 & 회고

막막한 디자인,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saejun 2023. 7. 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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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에 UXUI 부트캠프를 수강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지 한 달 반 정도가 지났다. 후반부의 포트폴리오 과정까지 포함한 부트캠프 수강기간은 총 5개월. 처음엔 이 정도 기간 동안 준비하면 충분히 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수업을 들을수록 이 생각이 너무나 큰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대학에서 4년 동안 전문적으로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들과 고작 5개월 만에 만들어낸 결과물로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2023년 하반기의 취업시장 전망은 그리 밝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취업 기간은 5개월보다 훨씬 더 길어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30대 중반에 들어서 늦게 디자인을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이따금씩 조금함이 치고 올라올 때면 디자인 공부가 더욱 막막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다 우연히 아래 영상을 접하고, 막막한 디자인 공부를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공부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공부라는 행위에 몰입하기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몰입의 세 가지 조건에는 명확한 목표, 정확한 규칙 그리고 신속한 피드백이 있는데, 공부가 이중에 2가지(정확한 규칙, 신속한 피드백)를 충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1. 공부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규칙이 정해진 환경에서는 뇌가 편안함을 느끼게 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부하가 걸리지 않는다. 예시 - 사람들이 쉽게 바둑, 체스에 중독되는 이유.) 
  2. 피드백(보상)이 굉장히 느리다. 예를 들면 열심히 공부한 고등학교 1학년은 3년을 열심히 공부한 뒤에야 지나야 대학합격여부란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몰입의 이 두 가지 영역을 개선하면, 공부에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고 심지어 '중독'까지도 될 수 있다고 한다.
 

힙합음악 분야의 사례 - 래퍼 블라세

다만, 유에서 무를 창조해야 하는 디자인 특성상 눈에 보이는 목표설정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불현듯 작년 쇼미더머니 11에서 참가자였던 블라세의 스토리가 생각났다. 당시 아래의 본선진출 비하인드 영상을 굉장히 흥미롭게 봤었는데, 그가 힙합을 공부하는 과정이 굉장히 체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쇼미더머니11에서 최종 3위(힙합팬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인 우승자라고 평가받는다.)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이 성적은 5년 동안 다섯 번 도전한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1. 쇼미더머니 777 - 1차 예선 탈락
  2. 쇼미더머니 8 - 1:1 크루 배틀 탈락
  3. 쇼미더머니 9 - 팀 크루 배틀에서 선택받지 못함
  4. 쇼미더머니 10 - 팀 선택받지 못함
  5. 쇼미더머니 11 - 본선진출 & 최종 3위

 
그는 인터뷰에서 본인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메타인지가 높음)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는 극 T성향의 MBTI를 가지고 있다. 블라세가 쇼미더머니에 지속적으로 참가한 이유는 바로 어떤 점이 부족한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참가경험을 바탕으로 6가지 항목(랩실력, 비주얼, 가사, 퍼포먼스, 캐릭터, 커리어)의 그래프로 만들어 본인이 자기 자신의 성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리고 피드백을 토대로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갔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다.
 
래퍼들에게 쇼미더머니 대회 참가가 몰입의 세 번째 단계인 '빠른 피드백'에 해당된다면, 몰입의 두 번째 단계인 '정해진 규칙'은 다른 유명 래퍼의 곡이나 이미지를 벤치마킹하며 성장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블라세의 경우, 데뷔 초에 플레이보이 카티란 미국 래퍼의 카피캣으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유명한 래퍼들도 데뷔 초에는 '누구누구의 카피캣'으로 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힙합씬에서 통용되는 '규칙'을 따라 하며 음악에 몰입하고 충분히 학습을 지속하다 보면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래퍼라는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동안 막영히 아티스트는 타고난 감각(MBTI에 비유하면 F성향이 도드라지는)에 의존해 작업할 것 같다는 나의 편견을 완전히 깨버린 사례였다.

UXUI 디자인 분야로의 응용

그렇다면 UXUI 디자인 분야엔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 몰입의 3가지 조건으로 돌아가보자:
 

1. 명확한 목표

목표는 명확하다. UXUI 디자이너로 취업하는 것.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엔 시기와 경력에 따라서 달라질 순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목표는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즉,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가장 최우선 목표다.
 

2. 정확한 규칙

얼마 전 부트캠프 연사님 중에 한 분이 수업 중에 해주신 말씀이 있다. 바로 웹디자인은 모든 게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것. 예를 들어, 요식업의 경우 경쟁업체 메뉴의 맛을 보고 정확한 레시피는 유추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레시피를 정확히 카피할 수 없다. 하지만, 웹디자인은 모든 코드를 볼 수 있고 따라서 코딩 지식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만 갖추고 있다면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다. 이것은 앱도 마찬가지. 
 
실제로 대다수의 디자인 강의 커리큘럼에는 이미테이션 과제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이미 출시된 웹이나 앱을 많이 모방해 볼수록 좋은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고, 이런 경험이 충분히 쌓이면 이를 응용해 편집 및 짜깁기를 통해서 나만의 색깔을 갖춘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다. 연사님들도 초반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다른 디자인을 벤치마킹한 다음에 조금씩 나만의 색깔을 녹아내라고 조언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내가 대학교 때 전공했던 건축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헌책방에서 르코르뷔제의 작품집을 전부 구입해 외우고 그릴정도까지 수없이 도면을 따라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교수님들도 늘 도서관에 가서 좋은 작품집을 찾아 따라 그려보라는 조언을 많이 했었다.
 
따라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나 카테고리의 웹/앱 UI를 최대한 많이 카피해봐야 한다.
 

3. 신속한 피드백

디자인을 공부할 때 가장 막막한 부분이 바로 이 단계에 해당한다. 디자인엔 정확한 답이 없기 때문에(물론, 디자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와 스킬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 내 디자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아래와 같은 경로들을 통해 내 디자인 수준에 대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 디자이너들이 활동하는 블로그/플랫폼 등에 내 작업물을 업로드하고 사람들로부터 평가와 코멘트를 얻는다.
  • 취업을 희망하는 업계의 디자이너에게 피드백을 요청해 본다.
  •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한다.
  • 디자인 회사에 지원한다(포트폴리오 제출)
  • 재능기부 플랫폼에 이력을 등록하고 프리랜서 작업을 수주해 본다.

 
흔히 포트폴리오 작업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내가 디자이너로 일을 지속하는 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연사님들이 강조한 부분은 바로 포트폴리오를 작업하는 데에만 매몰되어 있지 말라는 것. 디자이너 커뮤니티/컨퍼런스에 참여해 다양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프리랜서 프로젝트도 수주해 보길 권장한다. 단순히 개인의 스킬을 연마하는 걸 넘어서 폭넓은 경험을 해봐야 취업이라는 막막한 터널에 너무 깊게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 와중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 관련 영상 하나를 던져 주었다:

비전공자로 시작해 Grab의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된 한소리 디자이너님의 스토리를 다룬 영상.
 
디자이너에게 피드백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커리어 초반부터 주변과 SNS을 통해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에게 끊임없이 피드백을 얻었고, 커리어가 어느정도 안정궤도에 접어들었을 때도 포트폴리오 리뷰를 꾸준히 받았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소리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공부한 과정:

  • 대학교 졸업당시에 일러스트를 조금할 줄 알았는데, 이를 활용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수많은 회사에 지원하였고 작은 마케팅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시작

  • 워드프레스를 독학해가면서 회사에서 웹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디자인 책을 읽어가면서 모바일 앱 프로젝트를 진행. 옆 회사 개발자분들에게 커피 한잔 사드리며 프로젝트 외주에 대한 피드백을 받음

  • 본격적으로 UX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비전공자로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점과 주변에 디자이너가 없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음. 주말을 포함해 매일 3시간씩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프리랜서 작업을 수주. SNS와 주변인을 통해 UX 디자이너를 수소문하고 본인 디자인에 대한 피드백을 꾸준히 받음. 이 과정을 3~4년 동안 꾸준히 진행.

  • 메타 디자이너에게 포트폴리오 피드백을 받은 것을 계기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영어문화권 회사에 지원. 첫 화상 인터뷰가 5분만에 끝날 정도로 부족한 영어 실력이었음에도, 꾸준히 지원하고 디자인 과제에 집중하여 싱가포르 핀테크 회사 합격. 이후 Grab으로 이직

 

비전공자 입장에서 힘든 현실상황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 동원해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과정을 들으며 많은 동기부여를 받았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마주할 때면 여전히 힘들지만 결국은 나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실패는 과정이며, 여러 실패가 반복되더라도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5~10년 뒤에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다면 꾸준히 도전해보라는 말이 늦은 나이에 디자인에 도전하고 있는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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