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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 디자이너의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얼마 전 UX디자인 인턴 면접 중 받은 질문이다. 살짝 당황했지만 긴장 잠시 고민한 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최대한 정리해서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UX 디자이너는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제품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하며,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뜻은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최대한 매끄럽고 간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버버
UX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늘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그들과 공감하며, 유저 관점에서 효율적인 플로우를 설계하라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듣다/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런 뻔한 대답이 나온 것 같다. 다행히(?) 면접엔 합격했지만, 이번 경험을 계기로 UX디자이너의 역할과 내가 왜 UX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야 이런 고민을 하다니
피드백의 중요성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예전에 봤던 김경일 교수의 게임화 전략에 대한 강의가 떠올랐다:
피드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흥미로운 강의다.
단순히 노동처럼 느껴지는 일도 적절한 피드백이 제공된다면 게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피자가게에서 밀려드는 주문에 치여 하루종일 피자를 만들었다고 치자. 단순히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고통스럽지만, 그 노동의 가치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오늘 만든 피자: 000판 - 000의 손님이 덕분에 행복한 식사를 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하루동안 전국에서 어떤 알바생이 피자를 가장 많이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실시간 랭킹이 생긴다면 그 일이 더 이상 노동이 아닌 게임처럼 느껴지게 된다.
김경일 교수는 또 다른 예시도 제시한다,
1. 만약에 레스토랑에서 고객에게 조리과정을 알려주는 웨이터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eg. 몇 분 뒤에 음식이 나올 예정입니다.
2. 고객은 요리의 진행과정을 알고 내가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배려심을 느낀다.
3. 고객은 먹을준비를 더 차분히 즐겁게 할 수 있으며, 음식이 예상보다 늦게 나올 때 느끼는 분노(특히, 나보다 늦게 주문한 다른 테이블 손님이 먼저 음식을 받는 일이 발생하면 그 분노가 극에 달한다)를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즉, 인간은 내가 움직인 만큼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내가 지금 겪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명하고 연결성 있게 알고 싶어 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피드백들이 많이 개발되어 왔다.
위에서 말한 예시도 이미 일상생활에 적용되어 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배달앱에서 주문을 완료하면 음식이 조리되는 시간과 배달기사가 현관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강의 영상을 보면서 UX디자이너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피드백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요약하자면, 타겟 사용자의 니즈와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피드백들을 모아 시각화한 제품을 설계하는 것.
심플한 게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이어서 예전에 도널드 노먼의 책 <도널드 노먼의 UX 디자인 특강>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도널드 노먼이 설명한 테슬러의 복잡함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시스템에서의 전체적인 복잡성의 합은 항상 일정하다. 즉, 사용자가 무엇을 쉽게 이용한다는 것은 설계자가 이면에서 고려한 복잡한 사항들이 매우 많다는 뜻이다.
다만,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항상 복잡함을 최대한 감당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비행기 조종석을 예로 들어보자:
일반인에게는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충분한 교육을 통해 체계적인 조종석의 구조에 대해 이해한 파일럿들에게는 질서가 보인다. 또한, 이들에겐 오히려 이러한 수준의 복잡성을 감당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로 이륙과 착륙을 제외하면 항공기는 거의 대부분 오토파일럿 모드로 운행되지만, 여전히 조종석은 그 복잡성을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조종석이 심플해지는 만큼 오작동이나 사고 발생 시 조종사가 대응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든다면 훨씬 더 불안할 것이다.
즉,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수준과 상황에 따라 사용자와 설계자가 서로 어느 정도의 복잡함을 분담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 한동안 마라톤을 취미로 했는데 러닝 경험이 쌓임에 따라 애플워치/나이키 앱보다는 가민워치와 앱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심미적인 측면에선 애플워치와 나이키 앱이 더 심플하고 훌륭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가민 제품이 더 내가 필요한 상세한 러닝데이터와 기능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공감능력
도널드 노먼은 때때로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설계한 제품이 그들만의 논리와 정밀함으로 설계 되었기 때문에 사용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어리석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을 사용자가 의도한 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분개하기 전에 본인의 공감능력 부족을 먼저 반성하라고 일침을 날린다.
디자이너가 다루는 툴은 점점 더 컴퓨터의 논리와 규칙을 따라가고 있다. 피그마 같은 디자인 툴은 보다 미적으로 완벽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빠르게 완성시켜 줄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만의 논리에 갇혀버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이만큼 논리적으로 설계했으니, 사용자가 제품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그들에게 있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할지도 모른다.
결국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고,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의 입장에서 제품을 설계해야한다.
생활 속에서 뛰어난 UX 개선 사례를 찾아보라고 할 때 늘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이 버스 노선도 화살표 스티커다:
이미 10년이 다 되어가는 사례. 한 대학생이 버스 노선도를 볼 때마다 현재 나의 정류장 위치와 순환 노선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껴 화살표 스티커를 부착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3500개의 버스정류장을 돌아다니며 스티커를 붙였다. 자세한 스토리
논리와 정밀함을 바탕으로 설계되었지만, 사용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불친절하고 무책임한 디자인이 바로 이 버스노선도가 아닐까 싶다.
요약
이렇게 적고 나니 내가 생각하는 UX 디자이너의 덕목이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정리되는 듯하다.
요약해 보자면, UX 디자이너는:
1. 서비스 타깃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결과를 파악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피드백을 제품으로 시각화한다.
2. 타겟 사용자의 수준과 상황을 고려하여 그들이 제품을 사용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복잡성을 감당할지 결정한다.
3. 공감능력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논리와 정밀함을 바탕으로 설계된 제품이 사용자 친화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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